최다 득표하고도 패배할 수 있다? 독특한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
표는 더 많이 받았는데 선거에서 지는 이상한 나라가 있다?
4년에 한 번씩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조금 의아하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은 '서구 민주주의의 기수'라고 하는데 왜 직접선거가 아니라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것일까요? 그리고 '선거인단'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오늘은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에 대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년마다 11월 초가 되면 미국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서 투표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투표를 하는게 투표용지는 분명히 후보자의 이름들이 적혀 있지만, 사실상 'Electoral college'라고 이야기하는 선거인단에게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득표는 더 많이 했는데 이 선거인단 수에서 모자라서 승리를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사실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300만 표 가까이 더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 자리를 놓치게 됐습니다.
현재의 미국 선거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
왜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런 제도를 만들었을까요?
건국의 아버지들이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회의에 모였을 때, 왕은 아니지만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하자고 합의를 합니다.
누가 국가의 대표를 뽑을 것인가
그런데 어떻게 선출을 할 것인가? 여기서 3가지 방안이 제시가 됩니다.
- 첫번째 : 연방의회가 뽑게 하자
- 두 번째 : 주의회가 뽑게 하자
- 세 번째 :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게 하자 (단, 여기서 국민들은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진 백인 남성을 의미합니다.)
먼저 연방의회가 뽑게 하자는 주장을 한 사람들은 "국민들이 정치라든지 선거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기도 어렵고, 또 버지나에서 나온 후보를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어떻게 알겠느냐?" 그러니까 뭔가 좀 알고 있는 의회에서 뽑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 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되면 삼권분립이 훼손된다"고 격렬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의회에서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의회에서 의도적으로 좀 약한 대통령을 뽑아 놓고 전횡을 저지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반대했습니다.
주의회에서 선출하자고 의견을 내기도 했었습니다. 여기에 격렬히 반대한 것은 초대 재무부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튼이었습니다.
해밀튼 같은 경우 강한 연방정부를 주장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주의회에서 선출을 하게되면 연방의 정치에 주의회가 지나치게 개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반대를 했던 것 입니다. 그래서 주에게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을 주면 연방정부의 대통령 권한이 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 중 1인인 구베르뇌르 모리스 대표 같은 경우는 "국민들이 직접 선출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대통령 역시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랬더니 이번에는 미국의 남부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부 주들의 많은 인구는 사실 노예 인구였습니다. 그래서 이 노예 인구를 빼고 나면 사실상 인구수가 많이 줄게 되고 그러면 자신들의 목소리가 작아질 것이라고 걱정을 했던 것 입니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각 주의 대표들이 모여서 11명의 위원회를 구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계속 토론을 하는데 첫 번째로 나온 방안은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게 한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앞서 나온 내용대로 남부 주에서 반대해서 비준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철회하게 됩니다. 여러 차례 토론을 거친 끝에 세 번째 방안을 내놓게 됩니다.
그게 바로 선거인단 제도입니다. 독립적인 성형을 가진 이 선거인단들이 국민과 의회의 중간에 위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연방의회, 주의회 그리고 심지어 다른 국가 정부의 영향력으로부터도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가 있고, 그리고 포퓰리즘적인 선동에 쉽게 휘둘릴 수 있는 군중으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거인단이라는 굉장히 현명하고 또 합리적인 사람들이 한 번 더 국민들의 뜻을 스크리닝 할 수 있게 해 준다'라는 뜻을 가진 것입니다.
선거인단 제도의 문제점
그러면 이렇게 정해놓은 대통령 선거인단 제도가 잘 작동을 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1796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물러나자마자 그 선거에서 바로 문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처음 제도에서는 이 선거인단들이 2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각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게 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1위를 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2위를 한 후보가 부통령이 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1796년 선거에서는 1위는 존 아담스 그리고 2위는 토마스 제퍼슨이 하게 되었는데, 존 아담스는 뉴잉글랜드의 가장 대표적인 주 매사추세츠 출신이고 그리고 연방주의자였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버지니아 출신에 반연방주의자 그리고 민주공화당의 리더였습니다.
사실 헌법을 쓸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의 정당정치가 발전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물러서고 각기 다른 정파에 속한 두 사람이 대통령과 부통령을 하다 보니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800년 선거가 다가오면서 연방주의자 그리고 민주공화당 모두 '이번에는 우리가 대통령과 부통령을 모두 다 가져가야겠다'라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예를 들면 모든 민주공화단의 선거인단들은 한 표는 토마스 제퍼슨에게 투표하고, 다른 한 표는 당시 러닝메이트였던 애런 버한테 투표를 했습니다. 단 한 표는 빼고. 그래야지만 토마스 제퍼슨이 가장 많은 득표를 해서 대통령이 되고, 그리고 애런 버는 그거보다 한 표가 모자라서 부통령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방주의자당도 똑같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연방주의자당을 지지하는 선거인단들은 먼저 존 아담스에게 모두 한 표를 주고, 그리고 거기서 한 표를 뺀 나머지 표를 모두 러닝메이트였던 찰스 핑크니한테 준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연방주의자당은 계획대로 잘 되는 듯했습니다. 당시 존 아담스가 총 65표를 얻었고 찰스 핑크니는 64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공화당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민주공화당이 사실상 승리를 했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의 선거인단들이 토마스 제퍼슨에게 모두 한 표씩을 행사하여 총 73표를 득표했습니다. 그런데 러닝메이트였던 애런 버가 72표가 아니라 똑같이 73표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헌법에 적혀있는 대로 동수의 득표를 한 두 후보가 연방의회 하원에서 결정이 나기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애런 버는 사전에 토마스 제퍼슨의 러닝메이트로 점지받은 상황이라 부통령이 되어야 하는데, 본인이 토마스 제퍼슨하고 똑같이 73표를 얻고 연방의회의 하원에서 결정한다고 생각하니 '잘하면 나도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될 수 있겠다'는 욕심이 나기 시작했고 그래서 뒤에서 상당히 로비를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민주공화당의 리더였던 만큼 연방주의자 당원들에게는 상당히 정적으로 여겨졌고, 그리고 그 당시 연방의회가 선거가 끝난 다음 새로운 의원들로 갈리기 전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수의 연방주의자당 의원들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새로운 대통령이 민주공화당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 운명은 연방주의자당에게 달려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 주가 한 표씩을 행사할 수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16개 주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과반을 차지하려면 9개의 주에서 토마스 제퍼슨에게 표를 던져줘야 했었는데, 당시 민주공화당이 우세했던 주는 8개, 연방주의자당이 우세했던 주는 6개 그리고 연방주의자당과 민주공화당에 똑같이 의석이 갈라져 있었던 주가 버몬트와 메릴랜드였습니다.
그러니까 연방주의자당 입장에서는 토마스 제퍼슨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하염없이 미룰 수는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6일 동안 35번의 표결을 거쳤지만 결국 결론이 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토마스 제퍼슨의 영원한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알렉산더 해밀튼'이었습니다.
해밀튼이 보기에 제퍼슨은 정적이고 자신의 반대파이기는 하지만, 애런 버는 정말 상종 못할 인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해밀튼이 제퍼슨 쪽의 손을 들어주게 되고 결국에는 델라웨어 대표였던 제임스 베이아드가 36번째 표결에서 기권을 하면서 총 15개 주가 남겨졌고, 토마스 제퍼슨이 정말 어렵게 대통령이 됩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수정헌법 12조(선거인은 투표용지에 대통령으로 투표되는 사람의 이름을 지정하고, 별개의 투표용지에 부통령으로 투표되는 사람의 이름을 지정하여야 한다.)가 1804년에 통과됩니다. 지금도 선거인단은 2표를 가지게 되는데 한 표는 대통령 후보에게, 또 다른 한 표는 부통령 후보에게 던지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이 선거인단 투표를 고집하는 이유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가끔은 결과가 뒤집히기도 하는데 왜 이 제도를 안 바꾸는 것일까요?
안 바꾸는 이유는 현재 상태를 선호하는 사람이 꽤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는 과소 대표가 되고 어떤 주는 과대 대표가 되는데, 아무래도 과대 대표가 되는 주에서는 굳이 이 제도를 바꿀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지금은 인구조사로 인해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2020년 기준으로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는 55명의 선거인단을 가지게 되지만 와이오밍 같은 작은 주는 3명의 선거인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의 등록 유권자 수는 2,200만 명이 넘습니다. 반면 와이오밍주 같은 경우 등록 유권자 수가 약 27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선거인단 기준으로 봤을 때 캘리포니아가 와이오밍보다 약 18배가 많은데, 등록 유권자 수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캘리포니아가 와이오밍보다 무려 80배가 많은 것입니다.
와이오밍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굉장한 Voting power가 있는 것인데 굳이 이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이 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헌법을 바꿔야 하는데, 미국에서 헌법을 바꾸는 일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상원과 하원에서 3분의 2의 찬성으로 통과가 되어야 하고, 그리고 이게 각 주로 보내져서 4분의 3에 해당하는 주에서 비준을 받아야 합니다. 4분의 3에 해당하는 주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어제부터 2024년 미국 대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종일 언론이나 유튜브 등에서 미국 대선 결과 예상과 사전투표에 대한 실황 중계와 예측이 방송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선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미국의 독특한 간접선거와 선거인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